심안과 육안의 곳간

심안과 육안의 곳간

마음 가면 - 수치스럽다고 느껴질때 힘이 되는 글

벤투작 2023. 4. 29.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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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브레네 브라운 지음 / 안진이 옮김

 

지금 내 모습이 너무 수치스럽다고 생각하시나요?

혹은 다른 사람이 나에게 수치심을 느끼게 하나요?

살면서 이유 없이 공격하고 그로 인해 수치심을 받은 적도 있고 혹은 내가 남을 공격해서

수치심을 준 경험도 가지고 있겠지요?

 

 

수치스럽다는 말의 정의와 의미를 이해하고 극복할 수 있는 책을 읽고 내용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수치심은 우리가 차마 말하지 못할 때 힘을 얻는다. 그래서 수치심은 완벽주의자를
사랑한다. 완벽주의자들은 쉽게 입을 다물어버리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수치심을
인식하는 능력을 기른다면, 그래서 수치심이 들 때마다 그것을 알아차리고 말을
건다면 수치심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다. 수치심은 자기한테 이런저런 설명이 붙는
것을 싫어한다. 우리가 수치심에 관해 이야기하는 순간 수치심은 수그러들기 시작한다.
마치 그렘린들이 빛에 노출되기만 해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 것처럼, 언어와 이야기는
수치심에 환한 빛을 비춰서 수치심을 제거한다.

80쪽 용기 내어 수치심 들여다보기

 

수치심과 혼동하기 쉬운 또 하나의 단어는 '모욕감'이다. 저명한 정신의학자 도널드
클라인
Donald Klein수치심과 모욕감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절묘하게 표현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끔 수치심을 느껴도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욕을 느끼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

존이라는 사람이 동료 직원들과 회의를 하고 있는데 그가 영업에서 판매를 성사시키지
못한다는 이유로 상가사 존에게 '루저'라고 했다고 가정해 보자. 존은 그 상황을
수치스럽다고 느낄 수도 있고 모욕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만약 존이 자신에게
"아, 이런, 이런. 난 루저구나. 난 패배자야."라고 말한다면 그는 수치심을 느낀 것이다.
만약 존이 자신에게 "허 참, 저분이 자제력을 잃으셨네. 그래도 그렇지. 나는 그런 소리를
들을 이유가 없어."라고 말한다면 그는 모욕을 느낀 것이다.
모욕은 매우 기분 나쁜
감정이며 일이나 가정생활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 모욕을 느끼는 상황이 되풀이될
경우 우리는 그 메시지를 내면화하기 시작하고 모욕감은 서서히 수치심으로 변해간다.
그래도 모욕은 수치심보다 낮다.

98,99쪽 용기 내어 수치심 들여다보기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것들은 내가 취약해지고 불완전해지고 나 자신에게
따뜻해질 용기를 키웠을 때 찾아왔습니다.'
완벽주의는 우리에게 커다란 선물을 주고
목표의식을 갖게 해주는 길이 아니다. 완벽주의는 위험한 우회로다. 인터뷰에서 얻은
답변들 가운데 마음에 드는 것을 이 책에 공개하기 전에, 우선 완벽주의란 무엇인가에
관해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 내가 통계를 분석하며 알게 된 바에 따르면, 취약성과
마찬가로 완벽주의에 관해서도 잘못된 통념들이 널려 퍼져 있다. 내 생각에는 무엇이
완벽주의가 아닌가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나을 듯하다.

167쪽 두 번째 갑옷 :강박적 완벽주의

 

무엇보다 완벽주의는 성공의 열쇠가 아니다. 오히려 완벽주의가 성과를 저해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완벽주의는 우울증 · 불안 · 중독 ·  무기력 · 기회 상실과 높은
상관관계를 지닌다. 우리는 실패와 실수가 두려워서, 사람들의 기대에 어긋나고
비판받는 것이 두려워서 경기장 밖에 머문다. 건전한 경쟁이 펼쳐지고 노력이 행해지는
곳은 경기장인데도
마지막으로 완벽주의는 수치심을 피하는 방법이 아니다. 완벽주의는
수치심의 한 형태다. 완벽주의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은 수치심 때문에도 힘들어한다.

168쪽 두 번째 갑옷 :강박적 완벽주의

 

"크든 작든 간에 부정적인 결과가 하나라도 나오면 반드시 어떤 사람 또는 사물에 책임을
돌려야 (그리고 책임을 떠넘겨야) 한다. 다 지나간 일이라는 개념은 있을 수 없다."

그들은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누군가가 반드시 비난을 받아야 하는데 내가 나서기 싫다면, 당신이 비난을 받아야 한다!
비난은 수치심을 낳는다. 그다음에는 상처와 부정, 분노와 보복이 생겨난다."

비난은 고통과 불편을 밖으로 내보내는 행위에 불과하다. 우리 자신이 불편하고
고통스러울
때 우리는 뭔가를 비난한다. 우리가 약해져 있고 화가 나 있고 상처를 받았고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울 때 우리는 뭔가를 비난한다. 비난에는 생산적인 요소가 하나도 없다.
비난하려면 누군가에게 수치심을 주거나 못되게 굴어야 한다.


244쪽, 224쪽 사람들의 수치심에 귀 기울이는 법

 

비평하는 사람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강한 선수가 실수를 했다고 지적하거나 어떤 선수가
이러저러하게 하면 더 낮겠다고 훈수나 두는 사람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진짜 중요한
사람은 경기장에 서 있는 투사입니다. 그는 얼굴에 흙먼지와 땀과 피를 잔뜩 묻혀가며
용감하게 싸웁니다. 실책을 범하기도 하고 거듭 한계에 부딪치기도 합니다. 모름지기
노력을 하면 실수를 하고 한계를 드러내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경기장의 투사는 자신의
노력으로 경기를 치릅니다. 그는 위대한 열정이 무엇이고 위대한 헌신이 무엇이지 압니다.
그는 가치 있는 목표를 위해 온몸을 던집니다. 잘될 경우 그는 큰 성취감을 맛봅니다.
최악의 경우에도 그는 용기 있는 실패를 하는 겁니다
- 시어도어 루스벨트


307쪽 진짜 나를 보여줄 용기

 

내 친구이자 ≪마케팅 시대의 종말 UnMarketing≫이라는 책의 처자 스콜 스트래튼
Scott Stratten의 길이 남을 명언이 무엇보다 어울리겠다.

'증오가 가득한 사람들을 상대로 이기려 하지 마라. 당신은 재수 없는 사람들을
길들이는 조련사가 아니다'


214쪽 회피, 냉소, 비판, 쿨함, 잔인함에 대하여

 

 

어울려 살다 보면 자신이 남을 공격하는 줄 모르고 사람이 있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이던 나이 든 사람이던 혹은 직장 상사던 관계없이 반말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말투를 제외하고 다른 부분에서는 사람들을 배려하고 신뢰를 준다면

어울려 살아가는데 그렇게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반대로 호감 가는 외모에 부드러운 말투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의 본성이 다른 이를 무시하고,

비난하는 성격이라면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인연을 정리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이런 사람은 나와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경우는 처음부터 없기

때문입니다. 

 

서로 비슷한 사람끼리 모인다고 배려해 주는 사람들의 모임과 자신을 뽐내려고 하는 사람들의

모임은 분위기가 다릅니다. 나를 무시하고 수치심을 주는 곳이라면 그곳과 멀어지거나

최소한의 관계만 유지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누구를 무시하거나 수치심을 줄 자격을 가진 사람은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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