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안과 육안의 곳간

책 이야기

"오라는 데도 없고 인기도 없습니다만" - 저도 오라는 곳, 인기도 없습니다.

벤투작 2022. 9. 18.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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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에세이
저자 이수용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취준생이라고 합니다.
취준생이란 단어는 참 안타깝게 들려옵니다.
가장 아름답고 힘과 의욕이 넘쳐 흘려야 할 시기에 그렇지 못한 현실의 시간에서
작가님의 성숙함과 고뇌, 그리고 아픔이 표현된 마음의 글을 엿보았습니다.




"오라는 데도 없고 인기도 없습니다만" 제목 또한 나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한 해 두 해 시간의 흐름은 나이라는 숫자의 무게만 늘려놓고 흘러갔습니다.

"언제나처럼 자식이라는 이름의 유통기한도 철저하게 지켜왔다. 태어나고서부터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생활한 취준생 시절까지, 딱 그 정도가 자식의 유통기한이라고
생각한다...... 중략..... 그러나 어째서 부모라는 사람들은 그러지 못할까. 부모라는
이름의 역할도 끝났겠다. 속 시원하게 그래, 나도 할 만큼 했으니 이 지긋지긋한 녀석을
털어내 버리자 하면 그만 일 텐데. 그들은 언제나처럼 부모라는 이름의 유통기한이
지났음에도 소비기한이 있으니 자신들을 더 써먹으라 아낌없이 내어준다"

61~62쪽, 자식의 유통기한


부모의 입장에서는 자식이라는 것은 어찌할 도리 없는 숙명 같은 존재가 아닌가 합니다.
부모의 유통기한, 사용기간이 다됐으니 자기 일은 스스로 알아서 하라고 하면서도
한쪽 눈과 귀는 말 한마디 작은 행동 하나하나를 신경을 쓰며 바라보고 있습니다.

어린 자식에게는 독립을 말하면서 힘들고 속상한 일이 생기면 나이 지긋한 부모님께
다 풀어놓아야 마음이 편해지니 자식의 유통기한도 부모의 유통기한도 못 지키는 것이
우리들 마음이 아닌가 합니다.
한편으로는 과연 독립해야 할 나이에 독립해 부모 속 안 썩이고 잘 살아가 줄 자식이
있을지가 궁금하기도 합니다.

"이제는 나에게도 변화가 생겼어. 최근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누가 그러더라.
돈을 벌게 되는 순간 인간관계가 되게 단순해진다고.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아.
몸도 마음도 여유가 조금씩 줄어가는데, 그런 나를 이해해주며 내가 쏟았던
마음을 조금씩이나마 돌려주는 사람들이 생겼어...... 중략..... 나의 부족한
시간을 헤아려주고 먼저 다가와주는 사람에게 나의 마음을 쏟아보려 해.
냉정한 말일 수 있지만, 지금 내게는 너와 보낼 시간의 자리가 없어"
126 ~ 127쪽, 안녕, 오랜 사람아


새로운 만남에 두려움을 느끼는 마음이 있었는데 이 문장을 보며 새로운 생각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보고 싶고, 생각나고 상대방 역시 같은 감정일 거라고 생각하며 소심하게 전화를
걸고 문자메세지를 보내봅니다. 용기 내서 보낸 문자를 보고도 한 단어의 답장도
전화도 없는 사람, 나만 그 사람이 특별했던 걸 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나중에 전화드릴께요.'
제가 제일 싫어하는 멘트입니다. 지금까지 이 멘트를 들은 사람에게 전화 온 경우를
손에 꼽을 수 있습니다. 전화를 주신 분들과는 세월의 시간만큼 신뢰가 싸여가지만
전화가 없는 번호들은 매년 마지막 날 숫자들은 사라져 갑니다.

'작가님 글처럼 나를 생각하지 않는 사람을 혼자 사모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합니다.'

"터키의 속담 그대로 커피는 지옥처럼 검고, 죽음처럼 강하며, 사랑처럼 달콤하다.
커피에는 당신이 아직도 식지 않고 깃들어있다"
95쪽, 안부가 궁금한 사람


서로에 대한 애틋한 감정과 차곡차곡 싸여가는 신뢰가 추억을 만들고 나와의
인연을 끈을 계속 만들어가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세월의 폭이 넓기에 짐작할 수 없던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청년들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생각을 엿볼 수 있게 해 주신 글이었습니다.

오래도록 곁에 남아 있는 인연의 소중함과 부모 자식 간의 대한 관계에 대해
다시금 되돌아볼 시간을 만들어 주는 내용 또한 마음속을 맴돌게 합니다.
가을 낙엽을 보며 한번 읽어보기 좋은 책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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