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안과 육안의 곳간

책 이야기

"요리하는 조선 남자" - 냉면 먹으며 쉬고 쉽네요

벤투작 2022. 9. 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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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역사
저자 : 이한


맛있는 음식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지금이나 과거나 좋아하는 음식 앞에서는 모두 군침을 흘리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 같습니다. 설사 배가 부른 상태에서도 좋아하는 음식을 먹기 위해서
위가 어떻게든 공간을 만드는 장면도 방송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요 몇 주 정신없이 계속 일이 생기고 앞으로도 상당기간 일이 계속될 것 같아서
이번 주는 재미있고 즐길 수 있는 내용을 읽어 보았습니다.




닭고기, 쇠고기, 개고기, 회, 간장게장, 상추쌈, 냉면, 떡국, 만두, 고추장, 참외,
인절미까지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메뉴 12가지에 관한 내용입니다.
1가지 식재료를 제외하고 11가지 식재료 및 음식을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알레르기
없이 맛있게 즐길 수 있으니 이 또한 복이 아닌가 합니다.

"요리하는 조선남자"에서는 유교적인 선비의 나라인 조선에서 타인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좋아하는 음식을 기록한 선비들의 글이 뼈대가 되었으며 읽는
동안 "아"이런 요리법도 있구나 하면서 몰랐던 정보를 얻었습니다. 또한 사극이나
역사책에서 읽으면서 전혀 생각하지 못하였던 선비들의 음식에 대한 투정을
엿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경종 4년 8월, 경종은 크게 앓고 있었다. 원래 살이 많이 찌고 여기저기
부실했던 몸이었는데 건강이 나빠지면서 영 먹질 못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인 21일, 임금의 밥상에 게장이 올라왔다. 내내 끼니를 거르던
경종은 갑자기 입맛이 훅 당겨 게장과 함께 오랜만에 밥을 많이 먹었다.
그런 다음 후식으로 올라온 게 땡감이었는데, 식사가 끝나자 당황한 어의들이 임금에게 달려갔다.
"게장을 먹고 이어서 생감을 먹는 것은 의술에서 굉장히 꺼리는 겁니다"
134쪽 임금을 울린 게장

경종은 식사 다음날부터 설사와 복통에 시달리다 25일 승하를 하였다고 하니
게장을 먹고 4일 만의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후에 영조가 즉위를 하였는데
영조는 즉위 기간 내내 독살 음모설로 자유롭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게장과 감을
함께 먹으면 감의 타닌 성분이 게를 딱딱하게 만들어 소화가 힘들게 한다지만
건강한 사람은 함께 먹어도 별 탈이 없는 것 같고 한나라의 임금 자리와 실패 시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일을 이렇게 허술하게 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경종이 자식이 없어 영조가 왕세제로 책봉이 되어있었기에 시간의 문제였지
왕이 되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는데 굳이 확실한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그런
위험천만한 방법을 사용했다고는 믿기가 힘이 듭니다. 음식과 관련된 역사적
이야기와 더불어 흥미를 끄는 이야기들이 읽는 동안 가벼운 즐거움을 선사하는
내용이라 하겠습니다.

"상추쌈의 잎은 손바닥 같고, 진 고추장은 엿과 같네. 여기에 현미밥으로
쌈을 싸서 크게 씹으면 거품이 턱으로 흐르고, 누에가 조금씩 잎을
갉아서 먹는 듯하고, 콩짝지를 삭삭 씹는 듯하다. 눈은 감기고 입이
찢어질 듯하니, 맛에 푹 빠져 비장기 저릿저릿하네. 열 몇 개 쌈을
급하게 삼키니 이미 그릇이 다 비였구나, 이것은 입을 속이는
법이라 하니, 솥을 벌여 놓고 먹는 것이 이상하지 않구나.
부른 배를 쓰다듬으며 맑은 바람이 한들한들 불어오네.
- 이건승 (해결 당수호) (오거 반시 춘제)
148쪽 상추쌈을 좋아하는 남자들


조선말 점잔을 빼는 선비가 불이 터질 듯이 큰 상추쌈을 싸서 먹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렇게 크게 싼 상추쌈을 열 몇 개를 먹고는 그릇이 빈 것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하는 것도 재미있고 지금의 감성으로 읽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선조들이 대식가라는 사실은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니지만
물만 먹고도 이를 쑤셨다는 선비가 이토록 먹는 모습을 정감 나게 표현한 것도
재미있고 역시 음식 앞에서는 남녀노소 시대의 차이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들게 만듭니다.



추운 겨울 뜨거운 구들장 아랫목에 엉덩이를 들썩거리면 먹었다는
조선시대의 냉면
먹는 모습과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면 먹는 현재의 냉면
맛은 선조들이 드신 것이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다고 합니다.
서민들이 손쉽게 만들어 먹는 음식인데 화려함보다는 소박한 맛과
지혜가 냉면 맛을 만들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어른이 되어서 알게 된 냉면의 세계는 깊고도 복잡했다.
평양냉면, 함흥냉면이 냉면의 전부라고 생각했건만, 자세히 알아보니
평양이라면 모를까 함흥에는 회국수가 있을지언정 냉면은 없었다"
161쪽 임금님도 좋아한 서민음식


냉면 오이와 쌈무 그리고 계란 반쪽이 올라간 매콤 맛의 평범한 비빔냉면을
좋아하지만 언젠가 한번 밋밋한 맛에 육전이 올라간 진주냉면을 먹고 나서는
그 밋밋한 맛에 반해버렸습니다. 특징이 되는 맛이 없다고 한다면 반박할 수 없습니다.
다르게 표현한다면 밋밋한 맛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자극적인 맛에서 벗어나
부족함을 그대로 만들어낸 그 맛이 다시금 생각나게 하는 매력 같습니다.


더울때 먹던 추울때 먹던 냉면은 맛있죠


입안을 자극하는 복잡한 맛도 나름 매력이 있지만 미각도 순하고 부드러운 맛이
필요하듯 마음 편하게 읽으며 좋아하는 음식의 상식과 재미를 주는 내용이 좋았습니다.
힘들고 복잡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단순함과 여유로움으로 몸과 마음을
쉬게 하는 시간을 가지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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