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안과 육안의 곳간

책 이야기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 - 법정 스님의 글

벤투작 2023. 3. 4.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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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법정 글 / 최순희 사진 / 맑고 향기롭게 엮음
 
매년 겨울이 끝나고 봄을 계절이 오면 울적 해지고 이유 없는 슬픔과 외로움이 찾아 
옵니다. 올해도 마지막 꽃샘추위가 오니 울적함이 찾아왔습니다. 봄을 타는 것이라고 
알려주시는 분들도 있지만 뾰족한 치유법을 가르쳐 주시는 분은 없습니다.



 
울적하고 외롭다고 느껴질 때 위로는 해주는 친구를 찾을 수도 있고 영혼을 달래주는 
음악을 들을 수도 있는데 저는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안정을 찾아봅니다. 법정 스님의 
글은 외로움과 욕망의 빠져 버린 심신에 안정을 찾게 해 주는 글들이 많아 봄에는 
보약 같은 존재입니다.
 
 

묵묵히, 꽃처럼
꽃들은 무심히 피었다가 무심히 진다.
자기가 지닌 빛깔과 향기와 모양을 한껏 펼쳐 보일 뿐,
사람들처럼 서로 시새우거나 헐뜯지도 않고
과시할 줄도 모른다. 그저 말없이
자기가 할 일만을 할 뿐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삶의 모습으로 인해
둘레에 헤아릴 수 없는 기쁨을 안겨주고 있다.

『물소리 바람소리』·「무심히 피고 지다」에서
45쪽, 흙을 만지다

 
 
‘무심히 피었다가 무심히 진다.’ 계절은 흘러가는 대로 흘러가는 것인데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추운 날씨에 떨어지는 나뭇잎과 흩날리는 눈발과 빗줄기에 괜히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법정 스님의 글은 화려한 문장도 달콤한 속삭임도 없지만 편안함을 주는 것 같습니다. 
무엇을 하라고 은근한 권유조차 없습니다.  강요가 아니라 좋은 글을 수차례 읽고 읽으면 
자연스럽게 깨우칠 수 있게 합니다. 은근히 달아오는 아랫목같이 오랫동안 몸 안에서
맴도는 것 같습니다. 스님은 입적하고 안 계시지만 그래도 남겨놓으신 발자국을 따라가다 
보면 평안을 찾을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누가 있거나 없거나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꽃은 그 모습으로 주변에 기쁨을 줍니다. 
사람도 누군가 알아주기를 바라면서 하기보다는 그저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야 합니다.
 
 

쉴 줄 알고 놀 줄 알아야
누군들 쉬고 싶지 않으랴만
처지와 형편이 그렇지 못하니
쉬지도 놀지도 못한다고 할 것이다.
이다음에 가서 또는 무엇이 되고 나서,
무엇을 이룬 뒤부터라고 미루면서
그날그날을 쫓기듯이 바쁘게만 살아간다. 
그러나 죽음이 올지 더욱 큰 불행이 올지
누가 내일 일을 예측할 수 있을 것인가.
모르긴 해도 정년이 된 후 한꺼번에 쉬려고 한다면
그때는 쉬는 일이 도리어 무료하고 지겨울 것이다.
인생의 덧없음과 비애를 되씹느라고 
쉬는 의미를 찾지 못하게 될 것이다.

『산방한담』·「쉴 줄도 알아야 한다」에서
141쪽, 햇빛 속을 거닐다

 
 
어떤 말이 더 필요할까요? 너무나 명확한 진리인 것을 한평생 힘들게 일을 한 사람은 
쉬라고 해도 쉬지 못하고 몸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은퇴를 하고 나서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 몰라 인생 2막을 시작해야 할 귀중한 시간에 방황을 하지 말고 미리미리 쉼을 
연습해야겠습니다.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은퇴 이후의 삶을 위해 또 다른 나를
준비하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때 유행했던 부케를 준비하라 이야기일까요? 
쉬는 것도 이제 준비와 공부가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쉬는 날 빈둥빈둥하며 술만 먹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런 걸 지도 모르겠습니다.
 

맑고 향기롭게
세상을 탓하기 전에 먼저
내 마음을 맑고 향기롭게 지닐 때
우리 둘레와 자연도 
맑고 향기롭게 가꾸어질 것이고,
우리가 몸담아 살고 있는 세상도
맑고 향기로운 기운으로 채워질 것이다.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보다 단순하고 간소하게」에서
101쪽, 바람 안에 머물다

 
일이 잘 안되거나 속상한 일이 생기면 타인을 원망하던지 책임을 묻지 않고
제 자신을 반성해야 합니다. 분명 머리로는 타인이나 사회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잘 못된 행동인 것을 알고 있는데 마음은 생각처럼 움직이지 않습니다. 
타인과 사회를 원망하기 전에 나를 돌아보라, 말은 쉽게 할 수 있지만 실천하기는 
어렵습니다
 
거친 표현도 없고 강압도 없지만 읽으면서 나를 돌아볼 수 있기에 슬픔과 외로움이 
밀려오는 계절에 한 번씩 읽어보는 법정 스님의 글입니다. 그러면서 어딘가 나도 
남들에게 자랑해도 될 만한 잘난 구석이 있는지 찾게 되고, 지난 시간 동안 해온 일중에서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한 일을 찾으면서 남은 계절 동안 행복과 즐거움을 충만하게 
만들어 줍니다. 아직은 나의 맑고 향기로움이 타인에게 전파될 수준이 아니겠지만 
언젠가는 나의 즐거움이 전파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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