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안과 육안의 곳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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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 법의학자가 보는 죽음, 그리고 삶

벤투작 2022. 7. 1.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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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인문
작가: 유성호

살아가면서 몸이 힘들거나 마음이 상하는 일이 생기면 입에서 무심코 나오는 소리 중 하나가
'죽을 것 같다'라는 소리인 것 같습니다.

요즘같이 경제가 힘들 때 과도하게 투자를 하신 분들이 계시다면 매일 들려오는 부정적인
소식과 눈앞의 어려움에 취해 죽고 싶다는 말을 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이럴 때 일수록 희망을 품고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죽음과 관련 있는 책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를 읽어 보았습니다.
책이 출간 당시 기준으로 한국에 40명만 있다고 하신 법의학자가 시간이 다소 흘렸으니
늘어났을까? 하는 궁금증도 생기게 하였습니다.
법의학자 그러면 미국의 범죄 드라마를 생각하지만, 작가의 표현으로는 비슷하면서도
현실과는 다르다는 입장이신 것 같습니다.

"1부"의 마지막 단원 "법의학 앞에 완전 범죄는 없다"에서는 법의학자의 시선으로 보면 피해자가
사망에 이르게 된 과정과 원인이 찾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예시를 들어준 사례들은 한때
언론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안타까웠던
사건들이었습니다. 그 당시 피해자의 사망원인과 가해자의 범죄 동기까지 함께 엿볼 수 있었기에
흥미롭지만 역시 죄 없는 어린이나 정말로 도움이 필요한 약자들이 희생을 당하는 사건에서는
안타까운 마음이었습니다.


'오늘 하루는 누군가 간절히 원한 내일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오늘 하루를 소중히 살아야겠습니다.

1부의 내용이 법의학자가 본 타살이라면 "2부 우리는 왜 죽는가"는 죽을 권리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법의 눈에서 본 생명의 존엄성과 다양한 사람들이 죽음을 받아
들이는 과정을 소개하며 죽음도 준비를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해 주고 있습니다.

특히나 안락사에 관해 소개하는 부분에서는 너무 구체적인 내용이라 책에서 찾고 싶었던
아무리 어럽고 힘들어도 희망을 품고 삶을 가꾸어 가자는 메시지를 못 찾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한편으로 생각한다면 안락사라는 것은 죽음을 자신이 조절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되기도
하기에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마지막에 하고 싶은 말도 못 하고 중환자실에서
죽어가는 것보다 삶을 정리하는 시간
을 가지는 것이 더 좋은 것이 아니냐는 작가의
이야기 나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부와 2부가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많아서 걱정을 했는데 3부는 삶에 관한 이야기로
전개가 되었습니다.

"이제야 깨달았도다. 생이 이렇게 짧을 줄을!"


인도의 신화로 불리는 "마하바리타"에서 주인공과 대립하는 '카르나'가 마지막 전투 전
패배를 예감하고 했던 말이라고 합니다.
질투와 시기심 그리고 옳지 못한 행동을 하면서 보내기에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라 생각합니다. 영원한 삶을 원해서 약을 찾은 진시황이나
현재 과학의 힘으로 영생을 바라는 인류나 모두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김수환 추기경께서 폐렴이 악화되어서 병원에 입원하였을 때 심폐소생술을 하지 말 것을
당부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처음 숨이 멈추셨을 때는 심폐소생술을 하여 숨이 돌아
오셨는데 제차 심폐소생술을 하지 말 것을 당부하시고 다음 숨이 멈추셨을 때 김수환
추기경의 뜻을 받들어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아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영원히 살고자 하는 사람과 죽음 또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생각하는 사람 어느 것이
정답인지는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자신이 어떠한 모습이기를 바라는지 끊임없이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삶은 더욱 풍성해지고 깊은 의미를 품는다"


작가가 전달하고 싶어 했던 삶의 의미가 이 말이 아닌가 생각하며 오늘을 열심히 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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